물질주의가 현시하는 삶의 무목적성에서 깨어난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악이 선(善)을 휘두르는 세상이며, 많은 이들이 선을 알지 못해 악으로 향하는 세상이다. 추상적으로 느껴지던 선악에 대한 관념은 깨어난 이들에게 명료하게 인식되기 시작하며 이러한 자들은 선악식별을 명확히하기 어려운 자들이 악을 선이라 착각하고 또 악에 휘둘리는 비참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이러한 광경으로부터 선을 지키려는 문제 의식이 태동하며 나아가 사회에 대한 만연한 악을 걷어내고자 하는 고독한 길을 향한 의지를 불피우게 된다. 이를 통해 인간은 삶의 목적과 의미를 파악하게 되며 널리 선을 구현하고자 하는 소명의식이 깃들게 된다.

 

선을 통해 깃든 소명의식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훌륭한 지침이자 기준이 된다. 또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구가하는 돈, 명예, 권력과 같은 세속적인 가치의 혼탁함에서 벗어나 삶을 더욱 명징하게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소명의식이 깃든 사람이 제시하는 삶의 방향과 가치는 많은 사람을 감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감화된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뜻을 함께하고자 하며 이러한 형태가 권력으로서 작용한다. 이러한 형태로 잉태된 권력은 선의지를 향한다.

 

선을 인식하고 소명의식이 깃든 자는 공동체를 향한 삶에 뜻을 두고 살아간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가해지는 선의 무게는 삶을 짓누르며 삶에는 발랄한 생기보다는 엄숙함이 들어서게 된다. 속담대로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야 하는 것이다. 엄밀하게는 왕관을 써야되는 자 그 무게까지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의 자유의지가 아닌 선이 내리는 ‘명령’의 인식이 세상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의 형태로 나타나 한 인간의 의식에서 삶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의 ‘명령’은 인간이면 누구나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본성에 내재된 선을 인식하고 개화하는 자들은 소수에 해당한다. 이러한 소수들은 때때로 자신과 세상과 자연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은 무엇이며 자연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 인간은 어디를 향해 나아가며, ‘신’이란 또 무엇인가?와 같은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면서 선을 인식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이러한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구는 강한 지적 호기심에서도 시작되지만 삶의 위기로부터도 시작된다. 큰 성취 뒤에 느껴지는 허무감과 삶의 방향에 대한 강한 회의와 의문은 인간의 삶에 실존의 위협을 주며 이 때 인간은 근본적으로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존재 근원에 대한 물음은 인류의 수 많은 철학자 또는 성인이라 불리는 자들이 끌어안았던 문제다. 인류의 4대 성인이라 불리는 부처,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의 공통점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다는 점이며 그들의 육체는 죽었으나 그들의 위대한 정신은 죽지 않고 현대까지도 살아남아 계승되고 있다.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먼 훗날에 도래할 인류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처는 존재 근원에 대한 물음에 무아(無我)라고 했다.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존재’에 대해 '나’라고 결정지을 수 있는 그 어떠한 속성도 없다는 것이다. 이를 확장하여 부처는 삼라만상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했다. 세상 만물은 상호의존에 의해 일시적으로 생성하고 소멸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부처는 세상 만물이 비어있다, 공(空)하다고 표현했고 인류가 이를 깨닫기를 바랐다. 이러한 ‘자아’의 무상함을 깨닫게 되면 ‘나’라는 존재에서 이기심이 줄어들고 그 자리에 이타심이 피어오를 것이기 때문이며, 또 이 이타심은 세상을 향한 선으로 작용하여 궁극적으로 모두가 하나 된 마음인 화엄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존재 근원에 대한 물음에 사랑이라 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인류를 널리 사랑하는 박애정신을 의미한다. 기독교 정신의 핵심은 내 안에 깃든 성령을 인식하고 이 성령이 ‘하나님’과 같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형제 자매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 형제 자매에게는 모두 성령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또 우리는 성령으로 하나된다고 말한다. 기독교 삼위일체에 따르면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다. 즉 형제 자매에게 깃든 성령은 성부안에서 하나되는 것이다. ‘하나’ 되기 때문에 이는 우리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님을 의미한다. ‘너’라고 부르는 타인은 ‘나’인 것이다. 이를 진정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나’의 또 다른 모습인 ‘너’를 위해 용서하고 배려하고 자비를 베푸는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령을 모두가 인식하고 서로가 하나의 존재임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천국이 되는 것이다. 이 천국이 곧 모든 악을 걷어내고 모두가 선을 구가하는 세계가 된다.

 

공자는 존재 근원에 대한 물음에 인(仁)이라 했다. 여기서 인(仁)이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인(仁)이다. 인의예지란 ‘인’을 깨닫게 되면 ‘의(옳음)’가 무엇인지 알게되고 ‘의(옳음)’를 알면 ‘예’를 행하게 되며 ‘예’를 행하는 삶의 태도가 ‘지(지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의예지 구조에는 순서가 있다. 인(仁)을 깨닫는 것이 먼저다. 그러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仁)이란 무엇일까? 인(仁)이라는 문자의 형상을 보면 두 사람이다. 이는 곧 ‘우리’를 의미하며 ‘우리’는 ‘나’와 ‘너’가 하나되기 위한 사랑안에서 가능해진다. 유교에 따르면 인(仁)은 우리 안에 내재된 본성이다. 이 본성을 인식하면 타인에 대한 사랑이 피어오르며 공동체를 향한 삶을 지향하게 된다. 인(仁)을 인식하는 것은 천명(天命)을 ‘듣게’되는 것이자 선을 인식할 수 있게 된 것과 같다. 천명(天命)을 들은자 선을 펼치는 삶에 뜻을 두고 살게 된다.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와 베다에서 존재 근원에 대한 핵심 가르침은 범아일여(梵我一如)다. 범아일여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모든 존재는 하나와 같다는 것이며, 힌두교식 표현으로는 아트만과 브라만이 하나라는 것이다. 아트만이란 ‘나’라는 존재의 근원이자 본성이다. 기독교의 성령이자 유교의 인(仁)과 같다. 브라만은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의미한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같은 맥락으로 아트만은 브라만과 같다. 우리 모두는 아트만을 인식하지 못한 채 우리의 육신을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힌두교를 통한 구원은 ‘나’라는 존재에 내재한 아트만을 인식하는 것이다.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내 안의 아트만(성령)을 인식하게 되면 모든 존재가 브라만(성부)과 하나됨을 알게 된다. 아트만을 인식하는 순간은 육신을 나라고 알고 있는 에고가 죽는 순간이며 ‘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든 존재와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이후 모든 존재에 대하여 자연스레 사랑이 피어오르게 되고 타인을 향한 선의와 이타심이 피어오르게 된다.

 

위대한 성인과 종교의 가르침으로부터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선을 인식하는 자, 결코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선이 인간의 정신과 의식에 기거하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은 인간의 가치판단에 있어 가장 우선순위가 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선은 인간에게 어떠한 ‘의무’를 부과한다. 여기서 ‘의무’란 인간 자신의 존재 의미를 실현하기 위한 어떤 것이다. 그 것은 세상을 향한 박애정신이자 공동체를 향한 삶이고 인류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실현하는 과정이 인간의 삶이다. 선을 추구하며 악을 걷어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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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C++로 개발할 일이 많아질 것 같아 기본적인 문법들을 이해하고자 작성함.

 

# 접근지정자

접근 지정자에는 크게 public, private, protected가 있다. 접근지정자는 C++에서 클래스안의 멤버함수와 멤버변수에 접근 여부를 제어할 때 사용한다. public에 멤버함수나 멤버변수를 두면 클래스 외부를 포함한 모든 곳에서 접근가능하다. private에 멤버변수나 멤버변수를 두면 클래스 내부에서만 접근가능하고 외부에서는 접근할 수 없다. protected는 상속과 관련됨 (추가 이해 필요)

 

# this

C++에서 this는 클래스의 실제 인스턴스에 대한 주소를 가리키는 포인터다. 클래스의 모든 함수는 함수가 호출된 객체를 가리키는 this 포인터를 갖는다. 이는 컴파일러가 동작하는 과정에서 implicit하게 this 포인터를 사용가능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this 포인터는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활용된다. 첫 번째는 멤버변수와 매개변수의 이름이 같을 때 구분할 수 있고, 두 번째는 함수에서 *this를 반환하는 방식으로 함수체이닝으로 코드를 간결하게 작성할 수 있다.

 

# auto

auto는 자료형을 자동으로 추론할 때 사용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int main(void)
{
	int a = 5;
    int b = 21;
    auto sum = a + b;
}

별도의 int, float, double, char 등을 지정해주지 않아도 자동 타입추론을 통해 자료형을 할당한다.

 

 

# 람다함수

람다함수는 메모리 효율을 위해 사용한다. 일반 함수와 달리 함수명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람다함수의 구조는 크게 4가지로 구성된다. [](){}()다. 역할을 먼저 설명하면 가장 첫번째인 []는 캡처, ()는 매개변수, {}는 함수동작, ()는 호출인자다. []인 캡처는 매개변수와 동일하게 값을 받아와 사용할 수 있다. call-by-value 또는 call-by-reference로 받아올 수 있다. call-by-value는 외부변수를 변경하지 않을때 사용하고 call-by-reference는 외부변수를 변경할 때 사용한다. 예를 들어 call-by-reference로 사용할 때는 다음과 같다.

 

int main(void)
{
	int r1 = 1;
    int r2 = 2;
    
    [r1, r2](int a, int b)
    {
    	cout << r1 + r2 + a + b << endl;
    }
}

 

call-by-reference로 사용할 때는 다음과 같다.

int main(void)
{
	int r1 = 1;
    int r2 = 2;
    
    [&r1, &r2](int a, int b)
    {
    	r1 = 2;
        r2 = 4;
        cout << r1 + r2 + a + b << endl;
    }
}

 

캡처는 이외에도 [=]를 통해 외부변수 전체를 복사해 가져올 수도 있고 [&]를 통해 외부변수 전체를 참조할 수도 있다.

 

람다함수 구조의 두 번째인 ()는 매개변수를 의미한다. 위 코드에서 (int a, int b)와 같다. 세 번째인 {}는 동작할 함수 동작이다. 위 코드 예시에서는 값을 더해주고 출력하는 것이다. 네 번째인 ()는 두 번째 매개변수와 다른 호출인자다. (int a, int b)에 실질적으로 넣어줄 값을 의미한다. 

 

상류란 무엇인가? 상류란 개인의 사익을 떠나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강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진자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상류의 특징은 무엇일까? 후술하겠지만 책에서 상류가 보이는 여러 특징을 서술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류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다만 맥락상 상류가 되기 위해선 상류의 사고의 기저를 이루는 철학과 사상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한 대목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상류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은 사실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철학과 사상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전제하고 이에 대한 내용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거듭 확인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방법을 서술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상류가 되기 위한 방법을 서술하기에는 내용이 깊어지거나 서술한 책의 내용과의 동질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했던 내용 때문인지 이러한 내용을 채워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고 이에 대한 내용을 서술하고자 한다.
 
책에서 거듭 말하는 상류의 핵심은 강한 사회적 책임의식이다. 흔히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부르는 정신을 말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유교의 인(仁)을 떠오르게 한다. 인(仁)이란 인간이 하늘(天)로 부터 부여받은 자신의 본성을 의미한다. 인(仁)을 이해하게 되면 천지만물과 하나임을 알고 공동체를 위한 삶을 지향하게 된다. 인(仁)은 인간에 내재한 본성이기에 모두가 이에 대한 앎을 추구할 수 있고 또 이를 알아 군자가 되고 나아가 성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존재란 무엇이며 '나'는 어디서 유래했는가? '나'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와 같은 철학적 주제에 대한 천착이 필요하다. 이는 곧 자신의 삶의 근거와 목적과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인(仁)을 직관할 때 이뤄진다. 이를 직관하는 시점이 개인이 사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시점이다. 내안의 본성으로부터 사회 공동체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의무적인 '명령'을 받게 되는 시점이고 자율적으로 '복종'하게 되는 시점이다. 이것이 상류가 강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다.
 
칸트도 일찍이 이러한 인(仁)에 대한 존재를 인식하고 인(仁)이 부과하는 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찬했다.
"""
의무여! 우리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숭고하고도 위대한 이름이여! ..... 우리 의지를 움직이기 위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온 자연 성향들을 쫓아내지 않으면서도 ..... 너에게 저항하는 그 모든 성향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너의 존귀함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자연적인 성향들과의 모든 유착을 늠름하게 거부하는 너의 고귀한 혈통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오직 인간만이 자신에게 부여할 수 있는 가치, 그러한 가치의 필수적 조건은 도대체 어느 근원에서 유래하고 있는가?
"""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을 뽑으라면 칸트다. 모든 철학적 내용은 플라톤의 합리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론으로 귀결된다. 칸트는 이 합리론과 경험론의 끝없는 대립을 선험철학이라는 사상으로 종식시키고 통합시킨자다. 칸트의 선험철학의 핵심은 인(仁)의 또 다른 이름인 '이성'이다. 칸트는 '이성'을 통해 인(仁)인 자신의 본성을 자각한 자다. 이런 칸트가 기린 의무에 대한 예찬을 보면 숭고함, 존귀함, 고귀한 혈통이라는 말을 볼 수 있다. 의무를 부과하는 인(仁)의 성격(性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즉 인(仁)을 바라봤을 때 인(仁)은 숭고하며 존귀하고 고귀한 혈통과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仁)의 뜻을 구현하며 살아가는 상류는 인(仁)의 성격을 상속받게 되는 것이고 이로 인해 고귀한 혈통 즉 귀족이라 불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귀족적 정신의 발현을 우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부른다.
 
이러한 귀족적 정신은 물질적 가치가 우선이 된 세계를 구가해서는 얻을 수 없다.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정신적 고찰이 필요하며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쉽게 얻은 것은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였던가 인고의 시간을 거쳐 얻은 귀족적 정신을 가진자가 죽더라도 그 정신은 살아남아 후대에 높은 가치로 계승된다.
 
--- 
아래는 책에서 좋았던 구절이다.
- 국가라는 공동체의 기풍이 어지러워 진것도 사회의 중심을 이뤄야할 상류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 부와 권력은 차지했지만 황폐한 내면을 가진 이들의 횡포에 주눅들지 않는 품위가 필요하다.
 
- ... 말초적이기 짝이 없는 것들에 집착하며 산다.
 
- 그들이 영위하는 가치체계의 구조상 도덕과 양심의 순위는 돈에 대한 욕구보다 한참 하위에 머물 수 밖에 없다.
 
- 그들이 움켜쥐고 있는 돈과 권력을 떠나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으로 그들을 바라볼 때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한 어떤 명징성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 서구와 미국 상류의 겉모양을 닮으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 정작 서양에서 수백년에 걸쳐 다져놓은, 진정한 상류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상과 철학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 상류라는 개념은 문명의 지속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저를 이룬다.
 
- 일상적 어휘의 차이가 무척이나 중요한 이유는 언어가 사람의 감성과 지성의 징표가 된다는 인식이 상류정신의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내면을 담아내고 있는 사고의 철학과 깊이를 말해준다.
 
- 책창에 어떤 책이 꽂혀있고 어떤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는냐에 따라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계급일 수 있다는 얘기다.
 
- 연봉이 억대라 할지라도 깨어 있는 시간은 노예인 사람들이 아닌가
 
- 돈을 숭배하는 것보다 사람을 천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 1908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설립당시 총장이었던 A. 로런스 로웰은 경영대학원 설립 전제조건 중 하나가 사업가들이 '사익보다 더 숭고한 동기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 진정한 상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사람이나 물건을 돈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 품격의 고저는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 가진 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것으로 가늠할 수 있다.
 
- 한 사회의 수준은 대다수 구성원이 어떤 가치를 상류적 가치로 여기는가 하는 것으로 가늠할 수 있다.
 
- 평균적으로 미국재벌의 사회적 책임의식 수준은 한국재벌에는 견주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 상류 독자를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지갑이 아니라 지성과 인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미국의 고급매체는 알고 있다.
 
- 사람의 내면에 고결함과 고상함과 숭고함, 즉 신성한 내면의 계급을 간직하고 산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상류계급을 찬탈한자들에게서 주눅들지 않고 의연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니체 철학에 관한 책이다. 니체 철학의 이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니체의 여러 저작을 두루 읽어야 한다고 들었다. 처음 니체를 접했던 책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고 여기서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초인에 대한 이해가 어려웠다. 니체 철학이 무언가 난해하다 느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합리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론으로 점철되어 왔던 서구 철학의 내용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고 나아가 서구 철학을 부정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니체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방향에 대한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이유는 이 책이 니체의 여러 저작을 읽어보지 않더라도 니체가 저술한 여러 저작에서 핵심 사상이 드러난 부분만을 발췌하여 저자의 해설을 달아 두었기 때문이다. 

 

흔히 니체는 허무주의(니힐리즘)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말은 '신은 죽었다'일 것이다. '신'은 죽었다는 말에서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신'은 가상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 삶의 무의미와 무목적성을 직시하는 것이 두려워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신'을 만들었지만 이는 자기기만이며 거짓이고 허구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인간 삶의 허무함을 직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니체의 허무주의다. 하지만 니체는 허무주의를 주장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인간 삶의 무의미와 무목적으로 인해 일어나는 고통과 허무함을 직시하고 생성변화하는 지상의 세계만이 유일한 실재임을 철저히 자각할 때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러한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인간의 자기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이를 위한 방법이 '힘에의 의지'라는 정신력을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힘에의 의지'를 기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무상함과 고통을 긍정하며 이를 자기강화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니체는 이 '힘에의 의지'를 고양시키는 과정이 인간의 삶이라고 말하며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라는 표상으로 대신한 초인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

니체 철학을 올바르게 이해한게 맞다면, 정말로 니체가 말한 '신'은 허구인 것일까? 칸트의 순수이성과 기독교의 성령과 불교의 진아(眞我)와 힌두교의 아트만과 유교의 인(仁)과 도교의 도(道)는 무엇이란 말인가? 형이상학적 실재에 대한 직관의 경험은 거짓이고 스스로를 기만한 것일까? 니체가 말한 '초인'이란 이러한 형이상학적 실재라 여겨지는 것들과 다른 것이 맞는가? 니체가 옳다면 나는 존재의 무상함이라는 두려움을 떨치고 진정으로 허무주의를 직시할 수 있을까? 무엇이 맞을까? 나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 유신론과 무신론, 무엇이 옳은지 우리 인류는 끝으로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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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구절이다.

 

- 다른 인간을 진정으로 돕는 행위는 그 인간에게 물질을 보태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고 형성하도록 돕는 것이다.

 

- 인간에게 원숭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나의 웃음거리 혹은 하나의 참기 어려운 수치가 아닌가? 그리고 초인에게는 인간 또한 그러한 존재이다. 하나의 웃음거리 혹은 참기 어려운 수치인 것이다.

 

- 힘에의 의지란 우리 내부에서 더 고귀하고 풍요로운 영혼을 갖도록 몰아대는 근원적인 힘이다.

 

- 본래의 자기가 되는 과정은 주관을 장악할 사명을 띤 '이념'이 밑바닥에서 서서히 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명령하기 시작한다.

 

- 우리가 진정으로 신봉할 이념과 소명은 무수한 우회로와 경험을 거쳐서 서서히 내면 깊숙한 데서부터 성장해온다. 그러한 이념과 소망만이 깊이와 무게를 갖는다.

 

-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는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 니체에게 자유란 자신이 설정한 위대한 과제와 이념에 자신의 본능과 욕구의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인간이 최대의 힘을 갖기 위해서는 기꺼이 하나의 방향이나 규칙에 자신을 구속하고 복종할 수 있어야 한다.

 

- 하나의 정신이 얼마만큼 진리에 견디는가? 얼마만큼 진리에 감히 부딪히는가? 나로서는 이것이 정신의 품격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다.

 

- 인간도 자신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동안 고수해온 세계관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 인간이 자기극복을 자신의 과제로서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그는 어떤 곤경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 긍지에 찬 인간은 자신은 전혀 또는 거의 남의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서도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

 

- 초인의 이념을 스스로 실현하기 위해 자기초극을 강행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기애임과 동시에 참된 인류애라고 할 수 있다.

 

- 창조한자들보다 더 훌륭한 '한 사람'을 창조하려는 두 사람의 의지, 이것을 나는 결혼이라 부른다.

 

- 플라톤적 전통 형이상학, 기독교, 이념들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삶에 방향과 힘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 진정한 교육이란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의 본래적 자기를 구현하도록 돕는 것이다.

 

- 선이란 힘에의 의지를 고양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 도덕이란 공동체가 자신의 생존과 강화를 위해 정립한 가치체계일 뿐이다.

 

-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란 위대해지고 싶은 욕망, 숭고해지고 싶은 욕망이다.

 

- 위계 질서의 제거는 문명의 몰락을 가져온다.

 

- 인간은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존재이유와 의미를 찾는다. 인간은 숭고한 의미와 이념을 위해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반면 자신을 바칠 수 있는 어떠한 의미도 이념도 없을 경우 공허감과 권태감에 시달린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살고 싶단 내 바람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부터 더욱 심화된 빈곤이란 주제에 관심을 두게 했다. 나는 궁금했다. 사회적 빈곤은 정말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가? 사회적 빈곤이 나타나는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또 빈곤의 배태로부터 비롯되는 문제점과 지금 현 대응책은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런 빈곤에 대한 거시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라기보다 사회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미시적 관점으로 가난의 한 모습을 비춰줌으로써 그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은 재활용품을 수집하고 판매하는 노인들을 중점으로 이들이 처한 상황과 배경, 일상을 4년간 조사하고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재활용품을 수집하고 판매하는 소위 가난한 사람들 대다수가 노인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노인층 중 재활용품을 수집하고 판매하는 사람들은 왜 가난하게 되었는가? 이러한 노인의 가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먼저 현재의 노인이 1930년 중반에서 1950년 중반에 태어났고, 1980년말 시행된 사회보험제도에서 제외된 처지라는 것이다. 때문에 안전망이 구비되고 노후를 준비할 수 있었던 이후 세대와 달리 자력갱생을 요구받는 상태이다. 또, 사회와 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통적으로 지식창고 역할을 하던 노인이 책과 인터넷으로 대체되며 그 쓸모가 변했다는 것이다. 또 기초수급자 지정조건 때문이다. 이 조건은 '가족'의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을 넘지 않아야 하지만 연락이 끊긴 자식의 경제수준이 기준 이상이기에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또 노인은 한국사회에서 임금노동 시장이나 공공근로 일자리에서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노인은 구직이 매우 어렵다. 가사도우미나 음식업 외에 많지가 않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재활용품 수거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이 재활용품 수거라는 산업과 사회의 끝자락에 내몰린 일엔 노동의 그 어떤 정당성도 안정성도 바랄 수 없다. 하루종일 걷고 걸어 100kg~200kg 가량의 재활용품을 수집하더라도 겨우 단돈 8,000~9,000원도 안되는 수준의 대가를 받는다. 또 재활용품을 담기 위해선 리어카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성노인은 50kg가 나가는 리어카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 뿐더러 재활용품이 더해진 무게는 견딜 수도 없다. 또 경쟁과 약탈이 있어 여성노인이 발견한 재활용품을 남성노인이 가로채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신체경쟁에서 불리하며 쓰라린 패배감을 느끼게 된다. 또 용변을 보기 위해 세워둔 리어카나 카트를 도난당하기도 한다. 또 리어카를 끌다 주차차량과 부딪히면 수리비를 물어야 하고 과속방지턱을 넘다가 재활용품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리고 리어카를 끌기 위해 금속과 맞닿는 신체의 피부는 멍과 굳은 살로 덮힌다. 또 일부 건물주는 건물을 청소하는 대가로 재활용품을 가져갈 수 있도록 유사 고용을 하며 이에 따른 금전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이러한 궂은 상황에서 받는 돈은 한 끼 밥값이 채 되지 않는다.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실제로도 우리 한국의 노인 고용율은 OECD 가입 국 중 가장 높다. 또 OECD 국가 중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3.8%로 가장 높다. 즉 일을 많이 해도 빈곤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내놓는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 대응책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먼저 노인일자리사업이다. 보건복지부에선 노인일자리 활동지원사업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참여자 선발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이 필요하다. 또 참여자들은 월 평균 27만원씩 받았고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12만원씩 받지만 이 사업을 통해 노인의 상황이 실질적으로 나아졌다고 볼 수 없다. 이외에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에서 노인일자리 제공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직이 사업을 성장시키거나 지속성을 유지하는 경우가 매우 적다. 또 경로당을 공동작업장으로 바꾼 시도도 있다. 노인에게 쇼핑백 제조, 상품 포장 및 배달, 취약가구 무료 세탁, 먹거리 제조 등이다. 노인일자리와 부가가치 창출이란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여전히 참여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이들이 존재한다.

저자는 정부가 이러한 노인일자리사업을 만들고 장려하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음을 짚는다. 즉 일자리의 질이 낮고, 또 낮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사실상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일을 다른 것으로 전환시킬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노인들이 일을 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라 말하며 궁극적으로 노인들이 더 나은 기초소득을 가질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국가나 기업차원에서 이뤄지는 노인일자리사업으로도 불충분하다는 것을 여실히 알게 되었다. 사회적 빈곤이 사라진 세상은 가능할까? 지속적으로 변화를 거듭하는 인류에게 있어 새 문제가 발생하면 기존에 존재하는 이러한 빈곤과 같은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할 수 없다면 최소화시키는 노력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 정책이나 지역 정책을 통해 저소득층을 지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주거, 의료, 교육의 기회를 주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한다. 현재로서의 효용성은 미비하나 그럼에도 이를 진전시키기 위한 우리의 걸음은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마음에 남는 대목

  • 이제는 가난의 문법이 바뀌었다. 도시의 가난이란 설비도 갖춰지지 않은 누추한 주거지나 길 위에서 잠드는 비루한 외양의 사람들로만 비춰지지 않는다.
  • 노인들의 삶이 순전히 개인의 잘못 때문에 생겨나는 걸까?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해진 사람은 없다.
  • 국가는 헌법에서 개인이 가지는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 궁극적으로는 노인들이 재활용품을 줍지 않는 사회로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 가난한 노인의 문제는 연민과 감동 그리고 자선 사업으로 해결 되지 않는다. 정작 필요한 건 안전한 자선활동이 아니라 현실에 대해 인식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 우리는 누군가의 가난을 보며 사회 체제의 불안정함과 미비함을 깨닫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깨달음은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라 스스로의 상대적 안정감을 확신하고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하는 것으로 이어질 따름이다.


2023년 첫 번째 독서다. 64권을 읽은 작년과 비교해 올해는 얼마나 읽게 될지 올해 말이 궁금해진다. 이 책은 맥도널드를 프렌차이즈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해 도전했던 레이크록의 일화다. 종이컵을 파는 세일즈맨으로부터 시작해 맥도널드의 최고경영자까지 올라가는 과정에서 레이크록의 기업가 정신을 엿 볼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가치들은 지금에 이르러서 식상해진 가치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이 우리 인생의 바이블이라 했던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추천사가 있어 기대를 했지만 책이란 무릇 독자의 배경과 관심사에 따라 달리 느껴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아래는 책을 읽으며 밑줄 그었던 내용을 요약한 내용이다.

- 새 아이디어를 낼 때 처음부터 원대한 구상을 하지 않는다. 부분에서 전체로 나아갈 뿐이다.
- 단순해 보일 지언정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재능 있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이름값 못하는 천재도 많다. 또 세상엔 고학력의 낙오자로 가득하다. 전능의 힘을 가진 것은 끈기와 투지 뿐이다.
- 점포 입지와 점포 개발이 중요하다.
- 경쟁자를 이기려면 같은 입지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새 입지를 다져야 한다.
- "단, 비서님이 판단하지 말아주세요."
- 민주사회엔 미디어란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잘못을 저지르는 개인과 회사에 경고를 보내기 위함이다. 아프지만 없다면 사회전체에 위기가 올 수 있다.
- "사장님 그건 틀렸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 - 야나이
- "전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입니다. 회사에 돈을 벌어다 준단 말입니다. 다른 사람과 같은 취급 받을 생각없습니다" - 레이크록
- "나는 돈 보다도 진정한 참여의식을 느낄 수 있는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자리는 없었다." - 레이크록
- 나를 팔아야 물건도 팔 수 있다. 가장 먼저 팔아야 하는건 우리 자신이다.
- 위험 없는 성공 없다.
- 나는 문제에 압도되지 않는 법을 배웠다. 한 번에 한 가지 이상은 걱정하지 않았다. 문제가 있어도 불필요하게 조바심 내지 않으려 했다.
- 그녀의 그 강인함을 다감하고 따뜻한 성격이 감싸고 있었다. 좀처럼 조화를 이루기 힘든 덕목을 모두 가진 것이다.
- 모르는 게 있다면 도서관 책 모두를 뒤져서라도 알아내곤 했다.
- 매장을 오픈한 경험에 비추면 관건은 속도다.
- 그 사람의 능력을 믿지 못하면 애초 고용하지 말아야 한다.
- 돈 벌기 위해 돈 써라.
- 아무리 기민한 판단도 다른 사람에겐 독단으로 비칠 수 있다.
- 한 페이지짜리 제안서였지만 담긴 논리는 반박할 수 없었다. 광고효과, 장기적손해 등이 모두 기술 돼 있었음
- 정상의 자린 외롭다. 상실감만 남는다.
- 고객은 지불하는 비용에 걸맞는 서비스를 누려야 한다.
- 보통 재단을 세금 도피처라 생각한다.
- 일하는 즐거움, 일해야 하는 즐거움을 깨닫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미국 독립선언문에도 적혔듯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행복을 추구할 자유를 주는 것이었다. 행복은 성취의 부산물이다.

문제 상황

Node JS에서 MySQL에 Update 쿼리를 날렸을 때 당최 쿼리가 반영되지 않았다. 나의 경우에는 HTML selectbox에서 A, B, C 값 중 하나를 선택하면 ajax를 이용해 MySQL에 업데이트하는 간단한 기능을 구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업데이트 되지 않았고 결과를 출력해보니 아래와 같이 출력됐다.

 

OkPacket {
  fieldCount: 0,
  affectedRows: 0,
  insertId: 0,
  serverStatus: 2,
  warningCount: 0,
  message: '(Rows matched: 0  Changed: 0  Warnings: 0',
  protocol41: true,
  changedRows: 0
}

 

쿼리는 에러없이 실행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Rows matched: 0 Changed: 0이라고 출력된 부분이다. 분명 쿼리 실행 이전, selectbox에서 값도 잘 받아왔고 쿼리문도 문제 없이 작성했지만 결과에 반영 되지 않았다. 직접 MySQL Workchbench로 값을 수정하면 반영이 잘되었고, 권한 문제도 없었기에 원인을 더욱 찾지 못해 아까운 시간 하루를 시간을 낭비했다.

 

에러 해결 방법

원인은 쿼리였다. 늘 사용했었고 다른 기능 구현에도 원활히 실행 됐었기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용했던 쿼리는 다음과 같다.

const query = `UPDATE users SET column = ? WHERE username = ?`
return new Promise((resolve, reject) => {
	db.query(query, [value, username], (error, result) => {
    	if (error)
        	throw (error);
        else
        	reject(true);
    })
})

하지만 위와 같은 구문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아래와 같이 변경할 컬럼과 값, 조건문과 조건값을 별도의 변수에 담은 뒤 입력해주어야 한다.

const values = {'column': value};
const condition = {'username': username};
const query = `UPDATE users SET ? WHERE ?`;
return new Promise((resolve, reject) => {
    db.query(query, [values, condition], (error, result) =>{
        if (error)
            throw (error);
        else
            resolve(true);
    })
})

 

위와 같은 구문을 사용해 Update 문을 실행하면 아래와 같이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원인의 본질적인 문제는 찾진 못했다. 다만 SQL Injection 방지를 위해 '?'를 사용해 쿼리를 실행하는 prepared statement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글에서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려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ChatGPT에게 질의한 결과로 얻은 해결방법이었다. 에러는 해결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세상의 발전에 대한 환희감과 동시에 인간의 지위에 대한 박탈감을 느꼈다. 단순히 이 문제에 대한 해답만이 아니라 여러 학문에 대한 답과 철학적인 질문들에도 막힘없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ChatGPT가 열어갈 미래와 변화할 사회 모습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문제 상황

Node JS 다루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오류라고 한다. property가 없어서 발생한다고 하지만 분명 값이 있었기에 당최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이 오류를 마주한 구문은 try catch이었다. try와 catch 각각의 return 구문이 있었고, 신기하게도 try에서도 return되고 catch에서도 return 되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또 이와 더불어 console.log에 값이 두 개씩 찍힌다는 것도 문제였다. 하나는 올바른 값이 들어 있지만 하나는 값 없이 undefined만 출력됐다. 어디가 문제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모르는지 올바르게 떠올리지 못해 거의 하루를 낭비했다.

 

나의 경우는 HTML 쪽이 문제였다. 정확히는 form에서 submit이 실행될 때 이벤트를 듣고 있는 addEventListener 함수가 문제였다. 생각지도 못했다. 아래와 같이 addEventListener 함수를 한 번 호출했지만 계속해서 두 번씩 호출되고 있었고 이 때문에 console.log 값이 두 번씩 찍혔다.

"use strict";

const name = document.querySelector("#name"),
    email = document.querySelector("#email"),
    submitBtn = document.querySelector("#submit");

submitBtn.addEventListener("click", findUsername);

 

해결 방법

addEventListener 함수가 두 번씩 호출되고 console.log가 두 번씩 출력되는 이유는 아래와 같이 HTML의 form에서 onsubmit="return false;"이 빠져있다면 addEventListener가 두 번씩 호출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onsubmit이 form에서 submit이 실행되면 발생하는 이벤트 핸들러로 기본값이 true로 되어 있기 때문에 addEventLitener와 중복되어 두 번씩 실행되는 것이다. 

<form class="login-form" action="/find-username" method="post">
    <h4>이름과 이메일을 입력해주세요.</h4>
    <input id="name" type="name" placeholder="이름"/>
    <input id="email" type="email" placeholder="이메일"/><br><br>
    <input type="submit" id="submit" value="확인">

따라서 위와 달리 onsubmit="return false;"를 추가해주면 더 이상 console.log에서 두 번 출력되지 않고 값도 undefined로 출력되지 않는다. 

<form class="login-form" action="/find-username" method="post" onsubmit="return false;">
    <h4>이름과 이메일을 입력해주세요.</h4>
    <input id="name" type="name" placeholder="이름"/>
    <input id="email" type="email" placeholder="이메일"/><br><br>
    <input type="submit" id="submit" value="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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